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학창시절에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볼만한 명언 중의 하나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있다. 의대에 들어가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하는 의사학(醫史學) 시간에 이 말을 남긴 사람이 의성(醫聖)이라 불리는, 그리고 의사의 윤리 헌장을 만든 히포크라테스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예술 즉, art 가 실제로는 의술을 뜻한다는 것도. 그만큼 의학은 과학의 한 분야이면서도 예술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정도로 똑같은 질환에 대한 치료라도 의사 개개인의 지식이나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분야이다.

진료실로 들어오는 환자의 안색만 보고도 어떤 질환을 앓고 있는지 알아맞힌다는 전설적인 중국의 명의 화타와 편작. 한의사가 아니라 의대를 나온 양의사에게 있어서도 그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몇 년 전에 한창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허준’을 보면서 드라마의 속성상 가질 수밖에 없었던 과장과 허구성에 끌탕을 하면서도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을 했던 의사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리라. 의사에게 있어서 병을 잘 고친다는 말 이상의 찬사가 어디 있을까? 병을 잘 고쳐줘서 고맙다는 환자의 말 한마디보다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또 있을까? 의대에 다니면서 밤을 세워가며 공부하고 병의 증상을 외는 것도 명의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고칠 수 있는 환자를 의사의 무지로 인해 악화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리라.

의대시절, 당시 명의로 이름을 날리셨던 노교수님께서 “요즘은 진정한 명의가 드물어..”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예전에는 폐렴을 진단하려면 청진기를 들고 청진을 하고 가슴을 두드려보고, 그리고 여러 가지 증상을 체크해야 진단을 할 수 있었는데 의학의 발달로 간단한 X선 촬영으로 쉽게 진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발달된 의료 기기에 의존하여 의사로서의 기본적인 지식을 익히는데 소홀한 세태를 한탄하시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첨단과학의 발전과 함께 진단이나 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예전에 비해 명의 되기가 훨씬 쉬워졌다고 할 수도 있다.

피부과는 그동안 대표적인 비인기 과목이었다. 사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과질환에 비해 모든 것이 드러나는 피부질환은 그 병명은 엄청나게 많지만 막상 치료를 하려고 하면 별다른 치료법이 없어서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에 따라 첨단의 레이저들이 속속 개발되면서 과거에 전혀 치료할 수 없었던 많은 질환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써마지라 불리는 주름을 치료하는 기기도 그 중의 하나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눈꼬리가 내려앉고 양 볼이 쳐지면서 입가의 주름이 깊어지게 된다. 그리고 턱의 라인이 쳐지고 목에도 주름이 늘어난다. 이는 우리가 항상 서있거나 앉아있으면서 중력을 받기 때문이다. 중력에 의해 얼굴 피부는 항상 아래로 쳐지는 힘을 받게 되는데 젊었을 때는 피부의 탄력이 높기 때문에 피부가 아래로 쳐지지 않도록 당겨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탄력이 떨어지면 점차 피부가 쳐지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일단 피부가 쳐지게 되면 피부의 탄력이 좀 좋아졌다고 해도 원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일단 쳐진 피부를 다시 리프팅 시키는 데는 단순히 피부 탄력이 증가되는 이상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쳐진 피부를 리프팅 시키기 위해서 예전에는 성형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머리와 이마가 만나는 경계로부터 귀 뒤에 이르기까지 피부를 절개한 뒤 피부를 잡아당기는 수술인데 전신마취가 필요한 대수술이 필요했던 것. 치료 효과는 좋지만 문제는 수술 후 한두 달 정도 얼굴이 붓고 전신마취가 필요하며 너무 갑작스럽게 얼굴이 변하게 된다는 것. 수술 후에 피부의 주름은 좋아졌지만 “성형수술 했나봐” 라는 수군거림을 피할 수가 없었다. 써마지는 얼굴의 주름을 개선하고는 싶은데 표시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개발된 치료이다. 미국 FDA에서 medical face lifting 즉, 수술을 하지 않고 피부를 당겨서 주름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승인을 받은 치료이다.

이런 써마지 치료에서 효과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어떤 팁을 사용하느냐는 것이다. 써마지를 만드는 회사의 홈페이지에 나오는 슬로건은 “Everthing is in Thermage tip” 이다. 즉, 반도체 칩이 부착된 지능형 써마지 팁이 고주파 에너지나 냉각 장치를 조절해서 피부 손상 없이 리프팅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팁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인데 초기에는 그 효과가 썩 신통치 않았었다. 왜냐하면 초기에 나왔던 팁은 1 제곱센티미터의 넓이에 150번 고주파를 발사할 수 있었는데 그 정도 넓이의 팁으로 치료를 하면 150 샷만으로는 얼굴 전체를 치료할 수 없었고 자연히 치료 효과가 떨어졌던 것.

하지만 그 후에 점차 팁이 개량되면서 넓이가 1.5제곱센티로 50% 증가하고 300번 혹은 450번 심지어 600번까지 고주파를 발사할 수 있는 팁이 개발되었다. 이런 새로운 팁으로 450번 고주파를 발사할 경우 처음 나왔던 팁으로 치료하는 것보다 4.5배 정도 더 치료할 수 있게 되니 자연히 치료 효과가 많이 좋아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최근에는 3.0제곱센티로 원래의 팁보다 한번의 치료 넓이가 세배나 증대된 팁을 사용하고 있다. 이 정도 넓이에 400번 발사할 수 있는 팁으로 치료할 경우 처음의 팁보다 거의 9배 정도의 치료가 가능하다. 1.5제곱센티 넓이에 450번 발사할 수 있는 팁에 비해서도 거의 두배 정도의 치료가 가능한 셈이다. 그러면서 치료 비용에도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인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내용만을 놓고 보면 마치 의사의 경험이나 지식은 치료에 별로 중요하지 않고 써마지라는 기계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면 의학을 예술이라고 부를 이유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써마지 팁이 지능형이라고 해도 의사에 따라 치료 효과에 차이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즉, 치료의 노하우에 따라 똑같은 팁을 사용하더라도 치료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얼굴에 무조건 고주파 에너지를 주입한다고 다 효과가 좋은 것은 아니어서 주름이 생기는 방향과 피부를 리프
팅 시킬 수 있는 방향 즉, 벡터(vector)를 고려하여 치료할 때 보다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피부 미용치료에 있어서도 좋은 치료 결과를 얻으려면 하드웨어적인 의료 기술의 발달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소프트웨어인 피부 질환에 대한 지식이나 치료 경험 등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옛 성인이 말씀하셨던 “인생은 짧고 예술(즉, 의술)은 길다”라는 명언이 아직도 가슴에 와 닿는 것이다.

2006년 3월 14일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