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 피부염, 깨끗하게 치료할 수 있다

엄마들이 아토피 피부염을 악화시킨다?

너무 도발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피부과 전문의로 10여년 이상 진료를 하면서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보다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애들을 끔찍이 아끼고 위하는 요즘 엄마들이 설마 그럴 리가 있나?’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 고의로, 애들이 미워서 이렇게 하는 엄마는 아무도 없다. 모두 다 애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그리고 실제로 애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하는 일들이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아토피 피부염을 악화시키는, 바라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아토피 피부염은 아토피 체질이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매우 흔한 알레르기 피부질환이다. 아토피 체질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면서 알레르기가 기관지에 나타나면 기관지 천식이, 코에 나타나면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그리고 피부에 나타나면 아토피 피부염으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경우에 따라 이 중에 한가지만 나타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두 세가지가 한꺼번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 중에서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기관지 천식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유발요인(예를 들어 집먼지 진드기라든지 꽃가루, 혹은 우유나 계란 같은 음식 등)을 확인해서 그 유발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한 예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아토피 체질에서 생기는 질환이지만 아토피 피부염은 위의 두 가지 질환과는 달리 이런 것이 별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피부염 자체에 대한 치료가 중요하며 다른 질환과는 달리 알레르기 클리닉에서 치료하기보다는 피부과에서 치료를 해야하는 필요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원인이 어찌되었든 간에 피부염의 급성기에는 피부가 빨갛게 되면서 진물이 나다가 만성이 되면 피부가 두꺼워지면서 주름이 지고 색소 침착이 되어서 검게 변하면서 하얀 각질이 일어나게 된다. 아토피 피부염은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주원인은 치료를 제때에 해 주지 않아서이지만)이기 때문에 몸 전체가 건조해서 거칠고, 눈 밑에 주름이 지면서 검게 변하고, 얼굴에 각질이 생겨서 지저분하게 보인다. 그리고 특히 목이나 팔, 다리, 손목, 발목, 목의 접히는 부위에 있는 피부가 두꺼워지고 주름지며 검게 색소침착이 되기 때문에 꼭 때가 낀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이 어려서 심한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을 했는데 어렸을 때에 형이 지어준 별명이 ‘껍질’이었다. 팔 다리에 각질이 하도 많이 일어나서 항상 허옇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형이 무심코 지어준 별명이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큰 상처였다.

계속해서 각질을 손으로 떼어내 보기도 하고 목욕탕에서 열심히 때를 밀어보기도 했고 물을 열심히 발라보기도 했지만 그 때 뿐이고 각질은 계속 생겨나게 마련이었다. 중학교 때에는 담임선생님에게 불려가서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목욕 좀 하고 다니라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아무리 목욕을 하고 깨끗하게 씻어도 목에 때가 낀 것처럼 지저분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만성적인 피부염을 잘 치료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해프닝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아토피 피부염이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거니와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기 때문이었다. 생활환경이 개선되고 의학상식이 많이 보급되어 요즘의 젊은 엄마들 중에는 아토피 피부염이란 말을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 중에는 어렸을 때의 내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로 심한 피부염을 앓고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일부 피부과나 소아과 선생님들의 탓도 있다. “아토피 피부염은 체질적인 피부염이어서 나이가 들어야 저절로 좋아지는 병이다. 그러므로 심할 때만 병원에서 치료를 하면 된다.” 흔히 이렇게 말씀을 하기 때문이다.

피부과 약을 오래 쓰면 큰일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현대의 젊은 엄마들 생각과 꼭 맞는 말이기 때문에 엄마들은 금과옥조처럼 그 말을 지키게 된다. 아이들이 피부염으로 고생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은 그런 말을 하는 의사 선생님들이나 그 말을 따르는 엄마들이 피부염으로 고생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픈 것은 참아도 가려운 것은 참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정말이지 심한 가려움증은 참기 어렵다. 가려운 것이 심하면 따끔거리기까지 하는데 그 고통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오죽하면 피가 나도록 긁으랴. 아토피 피부염은 특히 가려움증이 심한 질환이다. 가려움증을 일으키는 자극에 대해 체질적으로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을 자극에도 가려움증을 느껴서 긁게된다.

예를 들어 옷깃이 스치거나 털실의 까끌거리는 자극, 혹은 조금만 실내온도가 높아져도 가려움증을 느끼는, 그래서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털로 된 옷을 안 입으려 하고, 목이 꽉 끼는 옷을 싫어하며, 항상 이불을 걷어차면서 자는 것이다. 아토피 피부염의 치료는 가려움증을 없애주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가려워서 피부를 긁게되면 누구나 피부염이 생기게 되고 기존의 피부염은 더 악화되기 때문이다. 아토피 피부염의 가려움은 굉장히 심하기 때문에 자면서 벅벅 긁는 것이 보통이다. 스스로 긁지 못하는 아기들은 밤새 뒤척이면서 찡찡거리게 되고 조금 큰 아이들은 밤새 보채면서 엄마한테 긁어달라고 떼를 쓰게 된다. 문제는 밤마다 가려움증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래 자도 항상 피곤함을 느끼게 되고, 짜증이 많아지게 되며, 성격이 날카로워지고 대인관계가 나빠지며 산만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가려운데 아무리 긁지 말라고 한들 그 말이 먹힐 리가 없다.

그러므로 가려움증을 없애기 위해서는 약을 먹여야 한다. 그것도 며칠간 먹이는 것이 아니라 가려움증이 완전히 없어져서 전혀 긁지 않을 때까지 기약 없이 계속 먹여야 한다. ‘피부과 약을 오래 먹으면 부작용이 심각하다는데 오랫동안 먹이라니?’ 라고 대부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가려움증을 없애기 위해 먹는 항히스타민제는 오랫동안 먹여도 별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더욱이 가려움증이 없어질 때까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먹일 생각으로 계속해서 약을 먹이게 되면 대개 금방 좋아지게 마련이어서 실제로 오랫동안 약을 먹이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토피 피부염 치료의 두 번째 단계는 약을 발라주는 것이다. 가려움증을 없애주는 약은 기존에 있는 피부염을 치료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피부염이 있으면 가려움증이 유발되므로 치료를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역시 피부염이 완전히 없어져서 피부가 정상 피부처럼 매끌매끌해질 때까지 약을 발라줘야 한다. “아니 피부 연고를 오래 바르면 실핏줄도 늘어나고, 모공도 늘어나고 여러 부작용이 생긴다는데? ” 라고 또 생각할 것이다. 얼굴에 바르면 안되는 센 스테로이드 연고를 오랫동안 바르면 이런 부작용이 실제로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의사들이 처방해주는 약한 스테로이드 연고는 얼굴에 오랫동안 발라도 별 문제가 없다. 그리고 가려움증 치료를 위해 먹는 약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바른다는 생각으로 약을 바르면 이처럼 오래 약을 발라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는 아무리 이런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를 해줘도 똑똑한(?) 젊은 엄마들이 약을 먹이고 바르다가 조금 좋아지게 되면 얼른 치료를 중단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얼마 안가서 아이는 다시 피부염이 심해지고 그제야 다시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약을 좀 쓰다가 조금 좋아지면 다시 중단. 그리고 곧 또 악화. 이런 과정을 계속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그 병원은 치료를 잘 못하는 것 같애’ 라고 스스로 판단하고는 다른 용하다는 병원을 찾거나 약국을 찾기도 하며 한의원 등을 전전하기도 하고 좋다는 민간요법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병원에 가서 하는 말은 “오랫동안 치료를 했는데도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치료를 했다니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오랫동안 치료를 한 것이 아니라 병을 자꾸 키운 것이고, 약을 아끼려고 했지만 심할 때마다 약을 쓰면서 약은 약대로 많이 쓴 것이고, 그러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계속되는 피부염으로 고생을 하게 만든 것이다. 아토피 피부염은 나이가 들어야 완전히 좋아진다. 그 말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토피 피부염을 방치할 것인가? 약의 부작용이 무서워서 치료를 변변히 하지 못함으로써 아이의 성격
이 나빠지고 항상 목욕을 하지 않은 것처럼 지저분하게 보이도록 놔둘 것인가? 아토피 피부염은 제대로만 치료를 하면 1년 중 거의 대부분을 항상 깨끗한 상태로, 가려움증이 없는 상태로 지낼 수 있는 병이다. 그 비결은 앞서도 얘기했듯이 가려움증이 완전히 없어져서 전혀 긁지 않을 때까지 약을 먹이고, 피부염이 완전히 없어져서 피부가 정상 피부처럼 매끈해질 때까지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을 바르라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이렇게 하면 정말로 거짓말같이 아이는 긁지 않고 밤에 깊은 잠을 잘 수 있게될 것이며 피부가 깨끗해져서 진짜 아이들 피부처럼 보들보들해질 것이다.

일단 이렇게 좋아진 다음에는 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 상태에서 할 일은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악화요인을 피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피부가 건조해지기 쉽기 때문에 건조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를 미는 것을 피하고 가급적이면 비누 사용을 줄이고 목욕탕에 오래 들어가 있는 것을 피하도록 한다. 그리고 목욕을 한 후에는 물기를 닦자마자 바로 보습제를 발라주는 것이다. 이런 점들에 유의하면 비교적 오랫동안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스트레스에 의해서, 심한 감기에 의해서, 너무 피곤해서, 또는 날씨가 차가워짐에 따라 몸이 건조해져서, 혹은 아무 이유 없이 다시 가려움증이 나타날 수 있다. 엄마들이 주의할 것은 항상 약을 갖고 있다가 가려움증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바로 약을 먹이고, 조금이라도 긁는 부위가 있으면 바로 약을 발라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전에 피부염이 심했을 때와는 달리 하루 이틀만에 바로 가려움증이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완전히 피부염이 없어진 상태에서 조금 피부가 나빠질 때에 바로 바로 대처를 하게 되면 아이는 피부염이 없는 깨끗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게될 뿐 아니라 엄마들이 두려워(?)하는 피부약을 오래 사용할 필요도 없게된다.

아이를 위한다고 하는 일들이 항상 아이들에게 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것도 그렇고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그렇다. 아토피 피부염의 치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까지 주장했던 바가 다른 피부과 선생님들의 의견과 약간 다른 점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아토피 피부염을 심하게 앓았었고 지금까지 내 의견대로 치료를 한 아이들이 좋아지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들에게 강조한다. 약을 아끼지 말고 먹이고 발라주라고. 차마 엄마가 피부염을 악화시켰다는 말은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지만.